후베이 성은 고대 촉나라(楚) 문화의 발상지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촉나라는 당시 호북 지역에서 가장 큰 나라였습니다.
촉나라는 8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찬란한 촉 문화를 창조하여 중화민족의 오랜 문화에 눈부신 광채를 더했습니다.
진나라가(秦) 천하를 통일한 후 전국을 46개 군으로 나누고 군 아래에 현을 설치했는데,
촉이라는 지명이 진시황의 아버지 이름과 중복되어 결국 荊山의 '荊'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호북은 주로 荊으로 불렸으며, 때로는 荊楚라고 함께 불리기도 했습니다.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는 荊楚 대지에 많은 인문 경관을 남겼습니다.
형주고성 (荆州古城)
荊州古城 (형주고성)은 湖北省 (후베이 성) 荊州市 (형주시)에 위치한 중국에서 문화유적 도시이며, 잘 보존된 고대 성곽 중 하나입니다.
한나라 (漢朝) 시대에 최초로 荊州城이 건설되었고, 삼국시대 (三國時代)에는 관우 (關羽)가 성 밖에 새로운 성을 쌓았습니다.
남송 (南宋) 시대에는 처음으로 벽돌로 성벽을 쌓고 천여 개의 망루를 세웠지만, 원나라 (元朝) 시대에 파괴되었습니다.
명나라 (明朝) 때 다시 벽돌 성으로 재건되었으나, 명나라 말기이자성 (李自成)의 난으로 인해 성이 허물어졌습니다.
이후 청나라 (清朝) 시대에 명나라 때의 옛 성을 본떠 다시 지었습니다.
장강 (長江)을 끼고 있어 지리적 요충지였던 荊州는 역사적으로 많은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진나라 (秦朝)의 장군 백기 (白起)가 楚나라 (楚國)를 공격했던 전투,
이릉 전투 (彝陵之戰), 그리고 삼국시대 여몽 (呂蒙)이 荊州를 빼앗았던 사건 등이 모두 이곳에서 일어났습니다.
특히 관우가 경솔하여 荊州를 잃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여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옥천사 玉泉寺
옥천사는 동한 시대에 처음 지어진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입니다.
당양시 (當陽市) 서쪽 玉泉山 (옥천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중국의 유명한 불교 사찰 중 하나입니다.
사찰 내에는 정전과 대웅보전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특히 대웅보전은 높이 33미터에 72개의 기둥을 모두남목 (楠木)으로 사용하여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입니다.
대웅보전 앞에는 수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무게 1500킬로그램의 철솥이 있는데, 이는 당시의 금속 가공 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사찰 주변에는 많은 명소와 유적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옥천사 철탑 (玉泉寺铁塔)이 가장 유명합니다.
북송 시대에 건립된 이 철탑은 높이 약 23미터, 무게 약 5만 킬로그램으로, 8각 13층의 거대한 철탑입니다.
탑의 기단은 물결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층마다 다양한 불교 조각상과 문양으로 꾸며져 있어 당시의 불교 예술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탑의 아래층에 있는 8개의 모서리에 새겨진 금강력사상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옥천사 철탑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중국 불교 건축의 역사와 기술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9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잘 보존되어 현재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는 이 철탑은 중국 문화유산의 보고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삼국적벽 三国赤壁
삼국적벽은 적벽시 (赤壁市) 북서쪽 36킬로미터 지점, 장강 (長江)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동한 (東漢) 건안 13년 (208년)에 손권 (孫權)과 유비 (劉備) 연합군이 이곳에서 화공을 사용하여 조조 (曹操)의 전함을 크게 격파했는데,
당시 불길이 강가 절벽을 붉게 물들여 '적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장강 연안에는 여러 곳의 적벽이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적벽시의 이곳이 바로 삼국시대의 그 적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적벽, 남평산 (南屏山), 금환산 (金鸞山) 등 세 개의 산이 솟아 있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
바위에 새긴 글, 바람을 맞으며 예를 올리는 단 (拜風臺), 봉추암 (鳳雛庵), 익강정 (翼江亭) 등 다양한 문화재와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적벽산 서쪽은 강을 바라보고 있으며 높이가 3미터가 넘는 웅장한 기세를 자랑합니다.